오늘 밤도별이 귓가에 스치운다

“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~”
일본 순정만화 ‘들장미 소녀 캔디’부터 미국의 블랙코미디만화 ‘심슨’ 등
우리의 어린 시절동안 동고동락해 온 만화영화들.
이중에서도 특히 우리를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장르는 단연 SF만화영화가 아닐까.
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의 한 단위가 아니라
더 광대한 우주의 일원임을 일깨우며 어린이들의 심금을 울린
SF만화영화 몇 편을 소개한다.

달세계 여행 (1902)

감독 | 조르주 멜리에스

#최초의 과학영화 #프랑스영화 #주인공이 천문학자 #달세계 여행

우주과학과 깊은 관련이 있고 최초의 과학영화, 천문학자가 주인공인 프랑스 영화 ‘달세계 여행’이다. 우주과학이 이미 영화산업도 선도했던 것이다. 위에 보이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아마도 많은 분들이 무릎을 탁 치면서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. 맞다! 이 영화는
명랑개그영화가 아니고 본격 SF영화다. 조금 잔인해 보이지만···.

너무도 실험정신 충만한 영화이기에 본격적인 얘기에 들어가는데 밑밥으로 포함시키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. 혹시 안 보신 분들은 꼭 한번 보길 바란다. 지겨울 틈도 없다.
단 14분 만에 끝나니까.

달세계 여행 (1902)
은하철도의 밤 (1985)
은하철도의 밤 (1985)

감독 | 스기이 기사부로

#군계일학 #고양이가 주인공 #섬세한 작품 #향수에 젖다

고전을 극화한 SF만화영화 하나를 들자면, ‘은하철도의 밤’이 군계일학이다.

미야자와 겐지의 단편 소설 「은하철도의 밤」 속 주인공들을 고양이로 대체해만들어진 1985년도 작품이다. 원작자가 워낙 세심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 만화도 굉장히 세심하게 연출됐다. 고양이로 묘격화된 주인공들의 표정이 시청자를 빨아들인다. 생각이 깊으면 푹 잘 수 있으니 주의!

원작자가 천문학에 조예가 깊어 보인다. 각 챕터마다 별자리, 성운과 같은 그 시대에 훨씬 앞선 천문학적 정보가 그대로 등장한다. 또한 우주감시센터의 상징, OWL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.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원작자는 올빼미를 주로 그렸다(OWL-Net은 한국천문연구원이 구축한 우리나라의 첫 번째 우주물체감시 장비). 너무 일찍 죽은 게 비통할 따름이다.

이 만화영화 속 주인공과 함께 마을과 우주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릴 적 은하수를 보던 시골에서의 추억이 절로 떠오른다. 심지어 읍내 신작로 네거리 모퉁이 인쇄소의 식자판까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.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랄까?

*OWL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?
http://webzine.kasi.re.kr/view/2017spring/sec1/page3

왕립우주군: 오네아미스의 날개 (1987)

감독 | 야마가 히로유키

#희대의 문제작 #우주개발 경쟁시대

다음으로는 희대의 문제작이자 걸출한 작품인 ‘왕립우주군:오네아미스의 날개’를 꼽고 싶다. 당시 일본 만화계의 기성세대가 아닌 상당히 젊은 세대의 팀이 무모하게 시작, 어마어마한 예산과 기간을 들여서 만든 희대의 ‘망’작이라고 할 수 있다. 후원사 중 일본 거대 완구 회사 ‘반다이’가 만화영화 산업에서 완전히 손을 뗄 정도였다. 만화 전문 ‘오타쿠’들한테 완전히 데인 것이다.

여하튼 이 만화영화는 지구와는 다른, 우주의 한 행성을 완전히 새로 창조했다. 언어, 글자, 문화, 화폐, 무기류, 사회 시스템, 심지어 종교까지! 제작진이 어지간히 몰두했던 것이다. 이 영화는 1950~60년대 우주개발 경쟁시대를 오마주한 것으로 보이지만, 실제로는 우주개발이란 과학적 허울을 쓴 허망한 국가전략과 그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팀의 의외의 성취 간 극명한 대비로 인류 발전 방향의 모호성을 꼬집는 패러디에 가깝다.

왕립우주군: 오네아미스의 날개 (1987)
보물성 (2003)
보물성 (2003)

감독 | 론 클레멘츠, 존 머스커

#필자 추천 #보물섬 아니라 보물성 #웜홀이론

이 작품은 제대로 된 스페이스 오페라(Space Opera, 우주여행이나 외계인을 소재로 한 작품) 만화영화이다. 디즈니사에서 마음먹고 만들어 2003년 개봉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한 비운의 명작이다.

이미 흥행했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「보물섬」이 원작이었다는 게 오히려 부작용을 부른 걸까. 원작의 눈치를 너무 본 것이 실패의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. 여기에는 소년이 청년으로 자라기 위해 겪는 성장통과 롤모델이 되는 악당 한 명이 등장한다. 매우 상투적이지만, 뭐 인생이 원래 상투적이지 않은가? 화려한 스페이스 오페라로서 디즈니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내용 또한 재미있다. 웜홀(서로 다른 두 시공간을 잇는 우주 공간의 지름길) 이론을 잘 차용해서 매우 그럴싸한 장면이 연출되니 필히 관람해보시길.

타이탄 A.E. (2000)

감독 | 돈 블루스, 게리 골드먼, 아트 비텔로

#외계인의 침략이라는 흔한 설정 #천덕꾸러기 지구인의 개과천선 활약상

어쩌다 보니 흥행에 실패한 미국 SF 만화영화를 또 소개해야 할 것 같다. 디즈니의 ‘보물성’보다 앞선 2000년도에 개봉했는데, 망해도 무지 망했다. 이 영화 덕(?)에 ‘20세기 폭스’사의 만화영화부서는 문을 완전히 닫는다.

스페이스 오페라의 가장 흔한 배경, 외계인의 침략으로 파괴된 지구가 이 만화영화의 배경이다. 마지막 순간, 어린 주인공의 아버지는 지구 부활의 열쇠를 주인공에게 주고는 무책임하게 사라진다. 고아로 남은 주인공은 갖은 고생과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며, 우주의 ‘천덕꾸러기 지구인’ 신세를 못 면한다.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대오각성하고 그럴싸한 역경을 뚫으며 지구 부활에 성공한다. 너무 판에 박힌 얘기라서 흥행에 실패했을 수도 있다. 그러나 어떤 영화가 판에 안 박힌 얘기를 했던가?

타이탄 A.E. (2000)
아기공룡 둘리 - 얼음별 대모험 (1996)
아기공룡 둘리 - 얼음별 대모험 (1996)

감독 | 임경원

#국내 창작 SF만화 #필자의 애장품 #우주를 난장판으로 만들꺼야

이쯤 되면 독자들도 판에 박힌 얘기에 식상해 하고 있진 않는가?

그래서 이번엔 이제까지 소개한 본격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만화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만화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. 국내 제작 창작 만화영화, ‘아기공룡 둘리 - 얼음별 대모험’이다.

‘아기공룡 둘리’는 엄혹하던 군사독재 시대인 1983년, ‘보물섬’이란 만화잡지에 5월 처음 게재되어서 10년 동안 연재됐다. 필자도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까지 모든 시리즈를 구매해서 방에 보관했으나, 어머니가 단 돈 몇 천원에 홀랑 파지 아저씨한테 넘기셨다. 아,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. 아마도 이 시기 쯤 대한민국 파지계에 흘러들어간 내 만화책만 해도 500권정도 될 것이다. 그중에는 루팡 3세 초판본도 있었다! 허허허

여하튼,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던 둘리 일행이 1996년 ‘아기공룡 둘리 - 얼음별 대소동’이란 장편 우주 SF만화영화로 또 다시 왁자지껄한 모험을 떠난다. 어린이 대상이라는 등급과 전혀 안 어울리게 삶과 죽음, 침략 전쟁, 섹슈얼리티, 가내 폭력, 좀비 등 온갖 영화적 모티브가 다 나온다. 매우 앞서간 만화영화이다. 여기 소개한 만화영화 중 필자가 유일하게 극장 개봉할 때 못 본 만화영화이다. 미국에서 개봉을 안 해줬다. 보는 눈이 없는 거지.

지금까지 단 몇 편의 우주 관련 SF만화영화를 소개했다. 물론 이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주 관련 만화영화가 있다. 사실 소개하고 싶은 만화영화가 수백 편도 더 있다. 유년의 추억 속 이 만화들이 필자가 우주평화를 수호하는 꿈을 가지게 된 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. 좋은 만화영화 우리 아껴서 보자.

사진

글_조중현
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의 센터장이자 만화 애호가.
유년 시절 우주 만화를 보며 ‘우주평화’를 외치던 소년이 현재는 우주위험 감시 연구를 열렬히(?!) 수행하는 중년이 됐다.
우주평화를 수호하다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퇴근해 만화를 보는 게 인생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.